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 울산대학교 김은선

친구의 추천으로 함께 신청하게 된 워크캠프는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떠난다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연들을 만날 생각에 더욱 설레는 시간이었다. 고등학생 때 일본영화와 드라마를 즐겨보게 된 덕에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익히게 되었고, 꼭 한번쯤은 일본인과 터놓고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한일문화교류 캠프는 내게 무척이나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친구들과 하루 일찍 도착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청한 뒤, 우도로 여행을 갔다가 다시 공항으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비행편이 늦어졌지만 공항에서, 함께 참여하기로 한 한국인 2명을 만나게 되었다. 7시가 되어서 모두 공항에서 만나게 되었고, 각자 조가 정해졌다. 그런데 맙소사, 한국인이 나 뿐인 것이다! 일본인 다섯 명과 한국인 나 혼자! 처음에 전화 면접에서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안다고 말한 것이 잘못이었던 걸까? 좌절할 새도 없이, 일본인들과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한국어를 매우 잘하는 ‘아이’를 비롯해 모두가 날 따뜻하게 맞이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에 올라타 용두암으로 향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별로 사진을 찍는 시간이 가져지고, 사진을 찍은 후에 나는 용두암이 무엇인지 모를 일본인 친구를 위해 용두암을 가리키며 잘 되지 않는 일본어로 설명을 해 주었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와 얘기를 하며 용두암을 다시 설명하는데, 한국어로 ‘돌’을 잘 모르는 듯하였다. 그래서 아이는 재빠르게 스마트폰을 꺼내었고, 나는 한글로 돌을 적어주니 아이는 밑에 적힌 일본어를 보고 단번에 이해하게 되었다. 반대로 아이가 알고 싶은 한국어를 일본어로 쳐서 내가 읽어주기도 하는 등, 우리의 의사소통은 더욱 더 원활해져갔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생태학교인 만큼 운동장도 넓었고 움막도 있었다. 처음에는 폐교같이 으스스한 분위기도 났으나, 곧 일본인과 한국인의 활기로 가득찼다. 이름순으로 방을 배정하고, 1조인 나와 친구들은 저녁준비를 하러 식당으로 향했다. 첫째 날의 저녁은 바비큐파티라서 환호했는데, 27명이 먹을 고기를 여자 여섯 명이서 굽다보니 힘든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밥도 짓고 상추도 씻고 고기도 굽고, 나름 팀워크를 발휘해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새 아홉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배가 고팠던 다른 조원들이 하나둘씩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서로 자처하여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몇 시간 동안 밥을 먹지 못해 지쳐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피곤함이 싹 사라졌다. 모든 조가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할 때, 나 역시 젓가락을 들어 일본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이따데끼마~스!’ 하고 외치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고기의 맛은 힘들게 고생한 조원들과 함께이기에 정말 꿀맛이었다. 

 

저녁을 다 먹으니 10시가 넘어 버려서 일정에 있던 캠프파이어와 쉰다리 만들기는 취소되었다. 내일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길 고대하며, 편의점에서 사온 과자와 음료로 즐거운 다과회를 열었다. 처음 만났는데도 어색한 것이 없었고,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뻤던 첫째 날이었다.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부스스하게 일어나 식당으로 향하니 일찍 일어난 친구들이 오니기리와 된장국을 준비해 놓았다. 밥에 참치만 넣고, 김을 싸먹었을 뿐인데도 정말 맛있고 든든한 아침 한 끼가 완성된 것이다. 나도 집에서 종종 이렇게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준비를 향하고 우리가 향한 곳은 인근의 바닷가였다. 차 두 대로 움직이다보니 1,2조는 먼저 도착해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항상 나는 카메라를 들고 다녀서 내가 찍어주는 일이 많았는데, 일본 친구들은 한국인을 만난 게 신기한 듯, 나에게 플래시 세례를 터뜨렸다. 혼자 찍히기가 부끄러워 친구들과 같이 찍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제주도의 가장 큰 특징은 돌이 많다는 것인데, 특히 화산폭발로 인한 현무암이 많다. 낚시를 하러 내려 온 바닷가 역시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매우 구멍이 많았다. 그래서 ‘고망낚시’라고 불리는 듯 했다. 구멍이 많은 돌 사이에 낚시 줄을 넣어 고기를 잡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구멍사이에 낚시 바늘이 걸린 적이 많아 낚싯줄을 갈아야 했다. 일본 친구들이 제법 많은 물고기를 잡았지만, 나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속상했다. 잡은 물고기로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내 또래의 친구들이 한 솜씨인 만큼 서툴렀지만 맛있었다. 

 

쌀쌀한 날씨에 고생했지만 즐거웠던 낚시를 마친 후, 수아네 식당으로 가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소화를 시킬 겸 삼삼오오 모여 산책을 하던 중에 뜻밖에도 한라봉과 금귤이 있는 비닐하우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주머니께서는 친구들에게 일본인이냐 물으시며, 나도 한 달 뒤에 일본에 간다며 능숙한 일본어 솜씨를 뽐내셨다. 그러곤 친절하게도 먹고 싶은 만큼 가져가라며 한라봉을 주셨다! 우리는 신이 나서 양손 가득 한라봉을 들고, 사진을 찍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뒤 비닐하우스를 나왔다. 다시 되돌아오는 중에도 한라봉이 일본어로 ‘대프콩’이라는 것을 배우며 쉴새없이 떠들었다. 

다음은 봉사활동으로 온 만큼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무 밭으로 향했다. 무 밭에는 이미 무가 다 뽑혀져있었고, 우리가 할 일은 그 무를 전달해 큰 포대에 담는 것이었다. 그렇게 담으면 크레인이 포대를 옮겨 트럭으로 싣는 것이 반복되었다. 봉사활동을 목적으로 왔으니 봉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 가지 실망스러웠던 점은 장갑을 지급해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손톱에 무가 손상되기도 하였고, 손톱도 다치게 되었으며 손이 시꺼멓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또 3시 30분까지 일을 하기로 했는데 한 시간이나 더 연장된 점은 정말 지칠 수 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두 시간 동안 일을 해야 된다고 통보를 하고, 장갑과 물을 지급해주었으면 더욱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무 밭의 무가 차곡차곡 포대로 들어가 밭이 비워진 것을 보니 뿌듯했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들어갔는데 대절버스에 카메라를 놓고 온 것을 깜빡했다. 하는 수 없이 대표님께 말씀드려 차를 타고 가지러 가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가장 많은 유채꽃밭을 보게 되었다. 재빨리 사진 한 컷을 남긴 후, 카메라를 찾고 저녁 장을 보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둘째 날 먹을 카레와 다음날 먹을 샌드위치의 재료를 사기 위해서다. 예산이 조금 초과되었지만 알뜰하게 장을 본 후, 그 전날 매우 맛있게 마셨던 복분자주와 제주도의 특산물 한라산소주, 막걸리 등을 사게 되었다. 다른 캠프에서는 성인이어도 금주를 하는 반면, 워크캠프는 술을 허용해주어서 매우 신기하고 좋았다. 

다른 조가 맛있게 한 카레라이스를 맛있게 먹은 후, 고대하던 캠프파이어 시간이 돌아왔다! 캠프파이어에 불을 지핀 후, 식사 전에 뽑았던 베스트 캠퍼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한국인은 내 친구 문은지, 일본인은 나에게 언니, 언니하며 잘 따르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던 호리카와 아이가 되어서 너무 기뻤다! 캠프파이어를 보며 모두들 맛있게 막걸리를 나누어 마셨고 함께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과자와 술을 꺼내어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벌써 내일 아침이면 마지막 날이구나, 하는 아쉬움이 컸지만 처음 만난 것 마냥 자기소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첫날 우리 조는 저녁 준비를 한다고 바빠서 소개를 제대로 못했는데, 뒤늦게라도 자기소개를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메마시떼, 와따시노 나마에와 김은선데스! 도조 유로시쿤.’ 하는, 제주도에 오기 전부터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본인은 20명, 한국인은 7명인데 그 중 한명은 현지에서 생활도 하는 소정이었고, 친구 두 명은 일본어를 아예 하지 못했다.  

 

 

특이하게도 나는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배운 적이 없어 쓰지도, 읽지도 못하지만 영화와 드라마를 즐겨 본 탓에 생활언어는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문법에는 맞지 않지만, 어느 정도 말을 할 줄 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일본인들과 대화할 때에도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본 친구들에게 일본어 잘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을 때에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특히 자기소개 시간을 통해, 내 친구들에게도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능력을 인정받아 뿌듯했다. 한국인인 소정이 역시 언니는 억양이 좋아서 금세 일본어를 깨우칠 거라는 말을 듣고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올해에는 꼭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시작으로 일본어를 정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열리는 워크캠프에도 참여를 하겠다고 말이다. 

 

 

 함께 모여 있으며 우리의 언어의 장벽은 모두 허물어졌다. 울산에서 살아온 탓에 경상도 사투리를 묻는 사람은 서울사람 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일본인 친구들이 더욱 궁금해 하며 사투리를 따라했다. 서울사람들도 어렵게 느껴질 사투리를 곧장 따라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에 열성인 그들이 무척이나 멋지게 느껴졌다. 또 호리카와 아이는 특이하게도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며 지내게 되는데, 그 이유가 현지에서 사투리를 꼭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역시 일본어에서 어려운 발음을 알려달라고 했고, 사투리도 배웠다. 또 남자와 여자가 쓰는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는데, ‘내가’를 말할 때 일본어로 ‘와타시가’라고 하지 않고 ‘오레가’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일본인 친구가 깜짝 놀라 쳐다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사실을 직접 확인받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의미만 통하면 모두들 즐겁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고, 그것은 내가 한국어를 쓸 때보다 일본어를 쓸 때 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웃긴 말을 한국인이 일본어를 쓴다면, 그 얼마나 웃긴 일일까! 처음에는 친구와 장난을 치며 주고받은 말이 ‘고레와 난데스까?’였다. 한국어로 ‘이건 뭡니까?’인 것이다.

 

두 번째는 ‘아루’와 ‘이루’의 차이를 알게 되었는데 내가 알게 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두 단어는 모두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아루’는 무생물이 있다. ‘이루’는 생물이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 것에서 왠지 모를 생명의 존중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한국인 친구는 또 그걸 배워서 ‘이빠이 아루!’라고 외쳤다. 바로 내 배를 보고 말이다... 그 상황에서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른 채 친구와 일본인들에게 놀림을 받았어야 했다.

 

 

아마 이제는 일본어를 떠올린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이빠이 아루’일 것이다. 세 번째로는 화장을 지운 후에게 친구들에게 건넨 말이다. 보통 화장을 지우면 우리는 흔히들 못 알아본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장난을 가미해 ‘다래?’ 한국어로 ‘누구야?’, ‘아따라시 온나다!’ 한국어로 ‘새로운 여자다!’라고 짖궂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 화장을 지운 친구는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한번은 ‘옆방에 새로운 여자가 왔어!’라고 장난을 쳤더니 일본 친구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 그러면 인사를 드리러 가야되는 거 아니냐고 했었다. 보통 누구냐고 묻는 게 먼저일텐데, 바로 인사를 드리러 가자고 하는 점에서 정말 일본인은 예의가 바르구나, 생각 들었다.

 

또 일본인들과 함께 지내며 느낀 점은 일본인은 정말 잘 들어주고, 잘 대답해주며 호응이 좋다는 것이다. 일본인들끼리 이야기를 할 때나 함께 이야기를 할 때, 누구 한명이 말을 막고 끼어들거나 하는 것이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잘 들어준다. 또 이야기에 대한 호응 역시 정말 잘해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빤한 얘기고 시시한 얘기라 할지라도 함께 웃어주고, 반응해준다는 것에서 감탄했다. 한국인은 귀찮거나하면 무성의하게 대답을 하거나, 다 아는 얘기라고 핀잔을 주는 적이 적잖게 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의 대화태도는 본받아야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 논란이 되었던 점은 바로 ‘글리코’ 운동선수이다. 은정이와 나는 지난 여름 오사카로 4박 5일 동안 여행했었는데, 도톤보리에서 찍은 글리코 아저씨의 사진 한 장이 논란이 되었다. 여태껏 글리코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일본인들 모두가 한 입으로 ‘오빠!’라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아저씨라고 했는데, 일본인들에게는 아직도 오빠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박태환 선수에게 박태환 오빠, 라고 하지 않고 박태환 아저씨, 라고 하면 기분이 나쁠 것이라는 농담을 하며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다. 우리는 가보지 못했던 강남과 홍대의 클럽이야기, 서울이야기, 또 반대로 우리가 다녀왔던 우메다에서 만난 멋진 남자 이야기를 하는 등 우리는 수없이 대화하고 웃고 떠들며 함께 지내는 마지막 날을 행복하게 마무리 하였다.

 

셋 째날 아침이 밝고, 서둘러 우리는 짐을 싼 다음 생태학교를 뒤로한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마지막 계획은 바로 세계문화유산답사였다. 제주도는 많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갖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성산일출봉’과 ‘만장굴’이었다. 우리는 그 두 곳을 둘러보며 일본과 또 한국과는 다른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했다.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공항에 도착해버려서, 우리는 너무 아쉬워서 자신의 폰과 카메라로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다. 서로 핸드폰 번호, SNS 메신저도 공유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가장 친했던 일본 친구 아라이 카나에까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니 정말 슬퍼져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한국에 살면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늘 드는데, 일본인 친구다 보니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얼른 돈을 모아서 도쿄와 오사카에 다시 가보겠다고 말이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국적의 제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같은 생각과 한 마음으로 친구가 되어준 모든 인연들...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한일포럼에게 너무 감사한다. 이 소중한 인연을 놓지 않고, 평생 갖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