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작은 마을, 사람 냄새 나는 그 곳! 박솔지(건국대 한국어교육과)

1# 관심
 고등학생이 되어 배우던 근현대사는 나에게 실패의 역사였고, 암흑의 역사였고, 이러한 역사에서 과연 어떠한 것을 배울 수 있을지 몰랐으며 오히려 울분이 생겼다. 억울하게 한국 사람들이 죽어 갔고, 일본 사람이라면 속을 알 수 없는 얍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교환학생을 갔던 중국에서 처음 일본 사람들을 만났다. 친절하고, 소박하고, 근면하고 배울 점이 많았지만 친해지기는 힘들었다.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고, 그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고 사실 힘을 들여가며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학원에 들어가고 첫 학기 청강했던 ‘외국인 글쓰기’ 수업. 그 곳에는 한국어에 좀 서투른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유쾌하고, 같이 있는 사람마저 웃게 만드는 친구였다. 수업이 끝나고 항상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같이 내일로까지 갔다 왔던 친구였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났고, 그 친구가 일본으로 떠나던 날, 내 앞에서 한참을 펑펑 울었다. 그 때, 정말 충격을 받았다. ‘아,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일본인과 실제의 일본인은 다를 수도 있겠구나..’그리고 결심을 했다. ‘아! 일본에 가야겠다!’ 그들이 어떠한 사람들이고 어떠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인지 궁금하고, 알고 싶었고, 텔레비전이 아닌 누구의 관점도 아닌 나만의 관점에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리고 7개월 뒤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2#그 곳

 우리가 간 곳은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고, 밤에는 별이 총총거리는, 산에는 사슴이 사는 마을이었다. 어떤 마을은 12가구가 살고 있고, 어떤 마을은 33가구가 살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보이는 아이도 누구네 집 아들이라는 것까지 알 수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아이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서 닫는 유치원이 생겨났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오히려 팔팔해 보이셨다. 마을을 옮겨 다니면서, 하루걸러 하루는 환영회나 송별회가 이어졌다. 내내 잘 먹고, 맥주도 맘껏 마시고, 공기도 좋고, 걱정도 없으니 피부도 저절로 좋아졌다. 이번 활동은 여자 둘, 남자 둘 그리고 일본 스텝인 유코상이 함께했다. 떠나기 전 참가자 인원이 적고, 개인적으로는 일본어를 못해서 걱정이 조금 됐다. 하지만 적은 인원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더 끈끈해 질 수 있었다. 유코상도 하나하나 챙겨주시고 통역도 잘해주셔서 많은 부분을 알고 느낄 수 있었다. 진짜 유코상이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이번 워크 캠프의 십분의 일도 못 느꼈을 것이다.  

 

 

 

 

3# 사람

 프로그램을 하면서 정말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눈앞의 모든 것을 먹고 싶어 하는 말 못하는 꼬맹이부터, 일본에서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 공무원 분들, 광산 아저씨, 마을 이장님, 시장님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소소한 것에 감동을 많이 느꼈다.

 

“할아버지 진짜로 밖에서 놀아도 되요? 계속 놀아도 되요?”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이 홈스테이를 하면서 할아버지한테 한 말이란다. 사실 저 말 자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밖에서 당연히 놀아도 되는 것 아닌가? 공부를 시켜서 그러는 건가? 처음에 저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다. 근데 방사능 등으로 도시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이 밖에서 놀지 못하게 한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아이의 저 말이 굉장히 서글프게 느껴졌다.

“뭐야, 보리차인 줄 알았는데, 간장이잖아~” 실수로 소면에 찍어 먹는 간장을 마신 할아버지는 할머니 머리를 퍽! 치셨다. 그리고 할머니의 반격, 다시 할아버지 머리를 퍽! (툭~이 아니라 진짜 ‘퍽!’이었다) 그런 모습들이 진짜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라 아이들처럼 느껴졌다. 티격태격 하는 모습이 정말 솔직하고 귀여우셨다. 아, 할아버지의 시계도 기억에 나는데 전자시계를 은시계 줄로 고쳐서 쓴 시계였다. 소박하면서도 작은 것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 참 할아버지에게 잘 어울리는 시계 같았다.

 

 

- 또 인상에 남는 것은 직업의식이다. 광산에서는 25년간 광산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가 어떻게 광산에서 일을 하였고, 그때 작업 환경이 어땠는지 직접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아, 역시 이런 설명은 저분이 가장 잘 하시겠구나’하고 생각했다. 누에 실뽑기 할 때 직접 알려주시던 아주머니도, 염색 체험을 할 때 가르쳐주시던 할머니도, 나무타기에 토끼 선생님, 종이 공예의 장인도 곳곳에 있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두들 자신의

 

일의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의 일에 전문가로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보였다.

 

 

4# 마무리

 

 워크캠프라고 해서 맨날 잡초 뽑기만 하는 건 아닌지 가기 전까지는 어떠한 활동을 하게 될지 몰랐다. (물론 활동을 하면서도 바로 다음에 무엇을 하게 될지도 잘 몰랐지만) 하루하루 너무 신기하고 다양한 활동을 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마, 일본 사람도 이렇게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가 너무 다채롭다보니 시간도 빨리 가고, 언제 무슨 활동을 했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래서 정리를 해보니 정말로 다양한 체험을 했고, 일본 사람 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도, 대만 사람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참 좋았다.

 

7/11 <인천-오사카-교토-아마가시> 출국과 이동. 저녁에는 별과 사슴을 보러 가기.

7/12 중국 친구 3명과 일본 친구 2명 한국인 4명으로 같이 관광을 하면서, 느낀 점을 서술. 계단식 논 - 400년된 나무 - 명수 - 나무타기 체험

누에 실뽑기 체험 - 일본식 펜션에서 바베큐

7/13 나무 조각 전시회 - 탄광 체험 - 천연 염색 체험

7/14 구치칸바야시 축제 - 타코야키 만들기 - 통나무 자르기 대회 참가 - 통나무 쉼터 정리하기 - 마을 사람들과 저녁

7/15 잡초 뽑기 - 저녁 휴식 땐 온몸으로 말해요 게임.

7/16 신생 종교 목재 건물 관람 - 누에 공장인 군제 박물관 관람 - 마트구경 쇼핑 - 마을 사람들과 저녁

7/17 종이 만들기 체험 - 소바 건져 먹기 체험 - 하나비 - 송별회에서 아리랑 부르기

7/18 <교토>로 이동하여 해산.

 

 

일본 사람이 궁금해서 왔던 이곳에서 이렇게나 다양한 일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엿보면서, 오히려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어떻게 늙어가고 싶은지.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스스로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단 내 인생을 내가 스스로 언제든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말을 통역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역해주던 유코상도, 아이를 안으면 잠들게 만드는 신의 손 지혜도, 뛰어난 영어 실력과 놀랍게도 같은 입맛이었던 윤상도,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고 타고난 일꾼이었던 민구 오빠도 같이 그 작은 마을에서 반짝거리던 시간들을 같이 공유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고, 기가 떨어질 때 쯤, 다시 그 마을에 찾아가고 싶다! 이 멤버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