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티셔츠와 강남스타일 K-POP의 아련한 추억 천지연(숭실대 일본학과)

 

사실 이 캠프에 지원하기까진 수십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이런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이 한번도 없었던 뿐더러, 일어일본학을 전공하면서도 내 일본어 실력에도 자신이 없었었다. 정말 지원하지 말까도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머릿속에 아른거려서 결국 캠프에 지원했고, 어쩌다 보니 나는 얼떨결에 면접을 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용기를 가지고 이 캠프의 지원했던 것을 지금 무척 행운이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첫만남은 정말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건물을 못 찾아 결국 지각하고 말았던 OT장소에는 낯선 사람들이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문화유산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도 그 어색하고 딱딱한 공기는 풀릴 줄 몰랐고, 팀 별로 모여 앉았지만 이 팀이 우리 팀이구나 하는 실감도 들질 않았다. 

 

8월 14일 오후 2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건 첫 일정이었던 창덕궁에서였다. 내가 속한 3팀은 처음부터 5명이 모이지 못했다. 사정이 생겨서 OT에 오셨던 같은 팀원이 못나오시게 되고, 대신 프랑스인이 우리 팀에 들어오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막막했다. 문지방의 정체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창덕궁 퀴즈를 끝내고 그 프랑스인 팀원인 토마가 합류했을 때, 생각보다 한국말을 너무 잘하고 재미있어서 오히려 더 즐거운 기분이 들었었다. 오히려 같은 팀원이었던 성민 오빠가 일본어를 전혀 못해서 대조적이라 웃겼던 것 같다.

 

또 우리 3팀의 일본인 분이었던 세이카. 세이카도 정말 한국어를 잘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일본어로 대화해 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강화도로 이동하던 버스에서 신경 써주며 일본어로 많이 말 걸어주시고 여러가지 표현도 새로 알게 되어서 너무 즐겁고 공부가 되었었다. 사실 이 캠프에 참가했던 목적이 일본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많이 부족한 일본어인데도 잘한다고 칭찬해주셔서, 빈말이라도 어깨가 들썩이는 것 같았다. 팀장이었던 종헌 오빠까지 가세해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가며 우리들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밤에 이어진 게임에서도 이 즐거움은 계속 이어져 나갔다. 빙고게임에서 운 좋게 1등도 하고, 스피드 퀴즈에선 재치 있고 황당하기까지 한 문제와 답변들에 정말 웃겨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팀원들뿐만 아니라 참가자들 모두 어색함을 깨고 더욱 거리가 좁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 웃음소리만큼이나 훈훈하고 유쾌했던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맛있는 참치 오니기리와 함께 시작한 다음날은 비가 쏟아졌다. 이대로 벽화작업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걱정이 현실이 되어 결국 벽화작업은 미뤄지고 모두 벤치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벤치작업을 하던 때는 그야말로 악조건이었다. 비바람은 몰아치고 춥고 축축하고, 모두들 평소보다 배로 힘들었을 텐데 군소리 하나 없이 묵묵히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벤치작업을 어느 정도 하고 우리들은 학교강당으로 이동했다. 바로 K-POP 댄스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배울 곡은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동작들 하나하나가 익살스러워서 차근차근 배울 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그저 웃으며 따라 했는데, 음악에 맞춰서 출 때는 그야말로 멘탈붕괴! 머리 따로 몸 따로, 내가 지금 춤을 추는 건지 굿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그래서 더 많이 웃고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나 싶었다. 선생님께서 귀한 시간 내주셔서 배운 춤! 나중에 꼭 써먹으리라 다짐했다.

 

벤치작업을 마저 마치고 돌아온 숙소에선 저녁식사 당번이 우리 조였기에 카레를 만들고 그 뒷처리까지 마친 뒤에, 그야말로 뻗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기절하듯 자버리고 다음날 아침을 맞았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은 맑았기에 벽화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 사실 벽화봉사에 개인적으로 로망을 갖고 있었기에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땡볕아래서의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고됐고, 붓질도 이리 삐죽 저리 삐죽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하지만 이 작업도 모두 함께 힘을 모아 했기 때문에 끝까지 잘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면서 같이 노래도 듣고, 맛있는 새참도 먹고.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기에’ 하는 그런 봉사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된 벽화화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순수한 감동이 일었던 것 같다.

 

바비큐가 메뉴였던 저녁식사도 당번이었던 팀들 덕분에 맛있게 먹고, 마지막 날 밤에는 캠프에 대한 소감과 칭찬릴레이, 베스트캠퍼 투표가 있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소감을 말했고, 토마와 히로미가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진솔 된 모두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 깊이 감동을 받았고, 나 역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겨우 참아냈다. 내가 원했던 커뮤니케이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학교에서의 수업으로는 배울 수 없었던 바로 그런. 나는 그때 한국인 일본인 프랑스인 그 모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아쉽고 또 아쉬웠던 마지막 밤은 마피아와 함께 깊은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마지막 일정이었던 강화도 고인돌 유적지 방문. 사실 나도 강화도 유적지에 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신기했지만 그래도 서툰 일본어로나마 일본인 분들께 우리나라의 유산에 대해 알리고자 바디랭귀지까지 써가며 가이드 분의 말씀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노력은 하긴 했는데 잘 전해지긴 했을까 하고 아직까지 좀 불안하고 미안한 마음이 있기도 하다. 커다란 고인돌 앞에서 마지막 기념사진까지 여러 장 찍고 나서도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팀이라는 것이, 이 캠프에 왔다는 것이 처음엔 실감이 안 났었는데 4일만에 어느새 그 반대가 되어버렸었다.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에서도 아쉬운 마음에 혜연 언니와도 계속 대화를 나누었고, 버스는 금새 신촌에 도착했다. 마지막에 우리 팀원들이나 다른 친구들과도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인사도 못하고 헤어져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도 잘못 탈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들의 워크캠프는 끝이 났다.

 

아직도 옷걸이에 걸려있는 단체티를 보면 그때의 추억이 아련아련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말하고 웃고.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덕분에 지금은 자신감도 많이 붙고 더 많은 체험을 해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녀보기도 한다. 모두에게 받은 그 열정과 배려, 그리고 따뜻함이 앞으로의 나에게 커다란 동기가 되고 원동력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덕분에 너무나 즐거운 한여름의 나날들이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