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불안해…요코하마 버리고 너도나도 부산에(한국경제신문)

 

日 불안해…요코하마 버리고 너도나도 부산에

[지구촌 리포트 - 특파원이 만난 사람] 데라시마 지쓰로 미쓰이물산 전략연구소 회장

한국 남동해 거치는 뱃길이 美~中 지름길
G2 교역 늘수록 부산항 중요

쑥쑥 크는 中 견제…韓·日 힘 합쳐야

데라시마 지쓰로 미쓰이물산전략연구소 회장은 "한국과 일본이 교류를 늘려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며 양국의 협력을 촉구했다. 안재석 특파원 


일본의 대표적 정책 브레인으로 불리는 데라시마 지쓰로(寺島實郞) 미쓰이물산전략연구소 회장(65). 그는 숫자가 빼곡히 적힌 두 장의 종이부터 내밀었다. 각국의 환율 추이와 일본의 무역통계가 적힌 자료를 보여주면서 인터뷰 내내 세상이 변했다고 열변을 토했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미국에서 아시아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몇 차례나 강조했다.

데라시마 회장은 한·일 양국 경제문제의 해법 역시 이런 변화의 흐름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일본에 관한 질문에도 ‘세계’와 ‘아시아’라는 큰 틀 속에서 답을 제시했다. ‘연계’와 ‘교류’ 등의 단어에 힘을 실었고 미국과 유럽이 아닌 ‘중국’을 빈번히 언급했다. 개인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도쿄 시내 ‘데라시마 문고’에서 그를 만났다.

▷세계 경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바뀌었다. 1990년 일본의 전체 무역액(수출+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지역은 미국이었다. 그 비중이 30%에 육박했다. 그러나 작년엔 11.9%로 낮아졌다. 20여년 만에 3분의 1토막 난 것이다. 반면 중국의 비중은 3.5%에서 20.6%로 높아졌다. 홍콩 싱가포르 등 ‘대중화권(大中華圈)’으로 불리는 지역으로 범위를 넓히면 비중이 30%까지 올라간다. 미국의 세 배 수준이다. 냉전 이후 50년가량 유지됐던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가 아시아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기업이든 국가든 이런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대비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다.”

▷경제축이 이동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여러 방면에서 뜨고 지는 사례가 반복될 것이다. 한국의 부산을 보자. 중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부산항은 세계 5위의 컨테이너 화물 처리 항구로 성장했다. 반면 일본의 고베와 요코하마항 등은 30~40위권으로 밀려났다. 미국과 중국 간 물동량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할 경우 곧바로 태평양으로 나갈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대개 한국 남동해를 거친다. 그 항로가 이틀 정도 더 빠르다. 부산항이 중간 기착지로 주목받는 이유다. 일본 기업 입장에서도 부산항은 중요한 물류거점이 되고 있다. 대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의 기업은 새 공장을 태평양 연안이 아닌 한국 동해를 바라보는 쪽으로 지으려 한다. 부산항으로 제품을 실어내는 데 유리하도록 입지를 선정하는 것이다.”

▷인재 전략도 달라야 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글로벌 인재라고 하면 주로 미국과 유럽에 정통한 사람을 일컬었다. 기업 경영 전략은 주로 이들의 지식과 경험에 의해 좌우됐다. 이제는 아시아형 인재가 중요해졌다. 아시아의 시장 흐름과 소비자 특성을 잘 이해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대학 교육도 이런 점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한·중·일 3국의 10개 대학이 ‘캠퍼스 아시아’라는 구상 아래 공동 교육시스템 구축에 나선 것은 같은 맥락이다. 아시아 각국은 그동안 경쟁을 통해 성장했지만 이제는 얼마나 서로 교류 인구를 늘리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다.”

▷일본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엔화가치의 급격한 상승이 문제다. 2008년 여름 달러당 110엔대를 웃돌던 엔화가치가 지금은 70엔대 후반으로 높아졌다. 유로화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이 기간 엔화가치는 유로화 대비 거의 두 배로 뛰었다. 일본 경제와 기업이 그만큼 성장했다면 이해가 되지만 그렇지도 않다. 주변국과 비교해 봐도 이상한 현상이다. 일반적인 경제상식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원화가치가 뛰고, 엔화가 떨어져야 정상이다. 구매력 평가 등을 통해 따져보면 일본 경제 체력에 맞는 환율은 달러당 95~100엔 수준이다. 요즘 엔화는 달러당 30엔가량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나.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재정적자가 많은 미국과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에 비해 일본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가 확산된 결과다. 원화와 엔화만을 놓고 보면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일본 경제계에서는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최근 들어 한국 기업에 밀리고 있다는 인식이 우세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약진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일본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투자자들은 오히려 엔화를 사고 원화를 팔고 있다.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경제를 하나로 묶어 네트워크형 연계모델이라고 이해하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전자산업을 예로 들면 일본의 원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이 제품을 기획하고, 대만이 위탁생산하는 시스템이라고 본다는 얘기다.”

▷엔고(高)에 시달리는 일본 기업들의 전략은.

“사실 경제 내부로 들어가면 엔고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르다. 국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재앙이다. 엔고를 피해 기업들이 해외로 자꾸 나가버리면 일자리 감소와 이로 인한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기업은 업종과 성장 전략에 따라 엔고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 물론 수출 기업은 어렵다. 그러나 내가 몸담고 있는 미쓰이물산은 작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오히려 엔고를 활용해 자원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린 덕분이다. 최근 1년간 일본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규모가 총 10조엔을 넘어선 것도 같은 전략이다. 엔고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유럽 기업을 보자. 최근 재정위기로 기업가치가 거의 반토막난 곳이 많다. 여기에 유로화 가치는 재정위기 이전에 비해 엔화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업을 사들이는 가격이 일본 입장에서 보면 3분의 1, 4분의 1 수준으로 싸졌다는 얘기다.”

▷일본의 미래 성장 산업을 꼽는다면.

“바이오·의료 분야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도쿄 인근 게이힌(京濱) 공업지대에 추진 중인 ‘라이프 이노베이션 센터’ 구상이 대표적이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미국국립보건원(NIH)이라는 조직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NIH는 연간 3조엔에 달하는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첨단 의료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농업도 의외로 성장 잠재력이 높다. 일본은 식량 자급률이 상당히 낮은 나라에 속한다. 일본이 공업 부문에서 쌓아올린 높은 기술력을 농업에 접목하면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산업들이 일본의 중심 산업이 되진 못하겠지만 다른 산업에 자극을 주는 ‘상징’은 될 수 있다.”

▷한·일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은.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무역 비중은 전 세계 무역량을 놓고 볼 때 6% 정도에 불과하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양국이 경제관계를 더 발전시켜 이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미래성장 산업 분야에서도 양국이 연계하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데라시마 회장은
일본 대표하는 경제논객…민주·자민당 정책수립 '브레인'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논객으로 유명하다. 1947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났다. 단카이(團塊)로 불리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다.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종합상사인 미쓰이물산에 입사했다. 영업 등 실무보다는 주로 조사와 연구, 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미쓰이물산의 뉴욕 본점 정보담당 과장과 워싱턴 사무소장을 지내며 1990년대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에서도 근무했다. 미국 생활을 마친 1998년 ‘국가 논리와 기업 논리’란 책을 펴내 주목받기도 했다.

일본 공공정책 연구기관인 일본종합연구소의 이사장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 와세다대 연구교수를 거쳤고 최근엔 도쿄 인근 사립대인 다마(多摩)대 총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산·관·학을 두루 아우르는 이색 경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과 자민당의 정책 수립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