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 국제워크캠프 in 교토 참가후기 (이성하/대일외국어고등학교)

이번 일본 아야베에서의 경험과 봉사활동은 정말 나에게 견문을 넓히게 된 큰 계기였다. 일본에 가는 것 자체가, 나 혼자서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내는 첫 번째 경험이었다.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공항에 도착해 표지판을 보고 길을 찾아가면서 뭔가 모험을 하는 기분도 그 당시에는 들었던 것 같다. 제주항공 부스에 일찍 도착해 줄을 기다려 티켓을 끊고, 차근차근히 해나가자 게이트에 도착하고도 시간이 약 30분 정도 남아 밥도 든든히 먹을 수 있었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늦장부리지 않고 일찍 행동해 차근차근히 해나가는 내 모습을 보고 꽤 뿌듯함도 느꼈다. 공항을 이륙해, 창밖으로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보며 혼자 일본으로 떠나는 것에 대해 두려움도 들었지만, 외고 일본어과에서 배우던 일본의 모습과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고 볼 생각에 흥분도 됐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꽤 고생을 했었고,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조금 아찔했다. 만나는 장소를 도착 당일에 정하기로 카톡 대화방에서 결정돼, 나는 어떻게든 한국을 뜨기 전 수시로 카톡을 확인했는데 공지가 아직 안 떠 많이 당황하고 걱정했다. 도착하고 출입 심사관에서 내는 서류 문제로 40분 정도 잡혀 있던 것도 꽤 아찔했던 기억이었다. 숙소를 몰라서 스태프인 양소혜 누나의 번호밖에 몰라서 그걸로 적었는데 계속 안 된다고 해서, 일본어로 겨우 사정사정해서 통과했었다. 통과하고도, 일행을 못 찾아 돌아다니다가 2층에서 Free Wifi 부스를 찾아서 겨우 카톡으로 만날 장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도와준 공항 일본어 직원에게 엄청나게 고마움을 느꼈고, 떠나면서 “아리가토”라고 말하자 “도이타시마시테” 라고 말하며 웃는 그의 모습에 뭔가 가슴이 맑아졌던 것 같기도 했다. 평소에 외국어 울렁증이 있었는데, 공항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극복하고 이번 일정 중에 일본어를 자신감 있게 사용했던 것을 돌아보면 공항에서의 일이 전화위복이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공항에서 겨우 일행을 만나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탑승하고 아야베 시로 떠났는데 가는 중에 본 오사카 근해의 푸른 바다가 맑은 하늘과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무척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도 그런 예쁜 바다는 제주도에서밖에 본 기억이 없었는데, 그 넓게 펼쳐진 바다의 모습은 오는데 여러 고난을 겪어 조금 지친 심신을 정화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한국에서 봤으면 무시하고 스마트폰만 봤을 항구의 모습도 뭔가 색다르게 보이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나의 모습에서 내가 일본에 온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머물 숙소인 ‘이코이너무라’의 숙소에 도착해서 남자는 1층의 방에 짐을 풀고, 여자는 2층에 짐을 풀고 환영회를 하기 위해 1층에 있는 남자 방에 모였다. 저녁은 일본 도시락으로 했는데, 도시락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느껴져 생각보다 괜찮게 먹었던 것 같다.


그래도 장아찌같은 자주색의 음식은 향이 너무 강해서 먹기 괴로웠지만 말이다. 고등학생인 나와 재신이, 동건이는 콜라와 주스를 마시고 대학생 형들은 맥주나 사케, 와인을 마시면서 서로 자기 소개나 취미를 한명씩 발표했다.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은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하게 되면서, 나와 재신이는 남자쪽의 통역사로 지정되었고, 여자쪽은 생각보다 일본어가 되는 사람이 많아서 원만하게 잘 진행되었던 것 같다. 일본인 스태프인 다나카씨가 와인을 들고 와서, 남자 활동자들에게 각자 꿈이 뭐고,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일본에 와서 어떤 게 제일 관심이 많은지 물어보았다. 각자 대답을 했고, 나와 재신이가 적당히 통역을 하면서 대화를 해 나갔다.


역사문제나 한일 국민의 서로에 대한 인식에 대한 애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일본 사람들도 일제강점기나 침략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극우 정치인들의 과격 발언으로 너무 일본 사람들은 나쁘게 보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며 다나카 씨가 말했다. 우리도 한국 사람들도 일본인에 대해 그렇게 나쁜 감정은 안 가지고 있다고, 그냥 극우 정치인들의 발언을 싫어할 뿐이라고 말하며 서로에 대한 친목을 쌓아갔다. 환영회가 끝나고, 각자 샤워와 짐정리를 한 뒤, 모여서 사온 과자를 먹으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웃으면서 봉사자들끼리도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다음날, 일어나서 이코이너무라 복지관에 가서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밥을 먹을 때, 꼭 초등학교에서 배식하던 것처럼 느껴져서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담당 안내자에게 설명을 듣고, 창문 닦는 팀과 풀 뽑는 팀으로 나뉘어져서 봉사활동을 했다.


TV에서 잡초 뽑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그게 그렇게 힘들까? 그냥 쑥 뽑으면 뽑힐 거 같은데 말이야”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뿌리가 벽돌 사이에 깊게 자리 잡아서 사분의 일도 안 했는데 땀이 뻘뻘 났다. 뽑으면서 농사하시는 분들이 실제로 이런 작업을 몇백평씩이나 한다는 걸 생각하니, “다 힘들게 해서 우리가 먹을 걸 만드시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잡초를 뽑고, 점심을 꿀맛같이 먹고 숙소에 가서 잠시 쉬다가, 다시 복지관에 가서 부탁받은 다른 부분을 다 같이 했다.


그 과정에서 갈퀴라는 연장이 쓰이자 너무 진행 속도가 빨라져서 “역시 도구의 힘은 위대해. 인류가 두 손에 도구를 쥠으로서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웃기기도 했다. 대학생 형들은 군대를 갖다 와서 그런지 무지 능숙하게 작업해서, “역시 남자는 군대를 갖다 오면 많이 성숙해지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다 같이 작업을 하니까 더 원만하게 진행이 돼서 좋았던 것 같다.

5시 반까지 휴식을 취하다가, 4팀으로 나뉘어져 홈스테이를 할 집으로 갔다. 셰프 형과 재신이, 동건이, 내가 같은 팀이 돼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는데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2면이나 포함돼 있어서 무척 다행이었다.


우리가 머물 집은 다나카 씨의 집이었는데, 일본식 고택이라 마음에 들었다. 방은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방 밖으로 넓은 논이 보여서 편안하고 힐링이 되는 분위기였다.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다나카 씨가 아들인 소라의 수학 문제집 채점을 도와달라고 해서, 재신이랑 내가 소라를 담당했는데 재신이가 일본어로 말하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그리고 딸인 시오리와 놀아달라고 해서, 같이 시오리와 카드 게임을 했는데 시오리에게 압도적으로 져서 옆에서 보던 셰프 형이 웃으면서 머리가 굳었다면서 농담을 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셰프 형은 달걀말이를 만들고 재신이, 동건이, 나도 같이 상 차리는 준비를 도왔다.


메뉴는 데리야끼와 소바, 그리고 오코노미야끼였다. 다나카 씨가 직접 오코노미야끼를 구워주셨는데 본고장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소바도 넉넉하게 준비해 주셔서, 다같이 맛있게 먹었고 데리야끼는 한국의 닭요리와 맛이 의외로 비슷해 신기했었다. 

그러던 도중, 다나카 씨가 부탁해서 노래를 하게 되었고,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고 말한 내가 걸려서 한국에서는 해본 적도 없는 강남스타일을 부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세프 형과 재신이, 동건이도 같이 노래 부르면서 춤추게 되었고, 그 뒤에는 빅뱅의 “뱅뱅뱅”도 하게 되는 등 나름 열심히 노래 부르고 춤 췄던 것 같다.


그리고 시오리가 겨울왕국 주제가를 다나카 씨와 같이 불렀고, 이어서 소라도 유치원에서 배운 합창곡을 불렀다. 저녁식사와 함께 행해진 재밌는 이벤트였었고. 그 뒤, 같이 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뒷정리를 하는 걸 같이 도와드렸고,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맛있게 밥에 낫토를 비벼서 미소국과 같이 맛있게 먹었는데, 다나카 씨가 그 모습을 보고 무척 신기해했다. 사실 동건이와 재신이는 잘 못 먹었는데, 나는 일본어 원어민 교실 때 무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사실 의아하기도 했다. 나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청국장이 더 냄새나는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버스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타고 역에 내렸다. 거기서 일행을 만날 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고 이 것이 그 날의 나의 수난의 시작이었다. 아야베 마을버스를 타고 아야베 역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무렵, 태풍으로 인해 지하철이 취소되거나 연기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일단 근처의 큰 대형마트로 구경을 하러 갔느데, 1층은 환영회를 위한 장을 보러갈 때, 여러 음식과 마실 것을 사기 위해 둘러본 경험이 있어서 2층으로 올라가 구경을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의류 코너가 보였는데 마츠리 기간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귀여운 어린이용 유카타가 보여서 신기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던 도중, 빠질 수 없는 장난감 코너가 보여서 구경을 하던 도중, 동생이 좋아하는 애니 캐릭터가 그려진 500피스짜리 퍼즐이 보여서 장바구니에 담고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했다.

그렇게 계산을 마치고 다시 일행들에게 돌아가자 일종의 오락실 코너에서 여러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유명한 인형 뽑기, 형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도전해보았지만 역시 잘 안 뽑혀서,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두근두근하면서도 꽤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나도 피규어 뽑기 기계가 있어서 100엔을 넣고 해보았는데, 될 것 같은데 결국 그 기계에서 500엔을 쓰고 쓴 맛을 봤다.


‘코인 도저’같은 동전을 좋은 타이밍에 집어넣어, 기계의 반동에 의해 동전이 밀려 나와 돈을 따는 기계도 있었는데 역시 오락실 기계는 만만치가 않았다. 그렇게 즐겁게 놀고, 쉼터로 가던 도중, 코난이 리듬에 맞추어 북을 치는 재밌는 기계를 발견해서 동건이와 코난이 같이 북을 치는 모습을 보았는데 둘이 호흡도 잘 맞추어 높은 점수를 달성해서 옆에서 보는 사람들도 엄청 재미있어 했다. 그렇게 마트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역으로 돌아오자 아야베역의 다음 역까지는 기차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다음 역으로 갔는데 여기서 전설적인 일본의 교통비를 체감할 수 있었다. 약 40분에서 50분에서 걸렸는데 1만엔, 즉 우리나라 돈으로 10만원이나 나오다니 정말 내려서 계산하면서도 그 살인적인 교통비에 놀랐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소베 역에서 기차를 타고 교토를 향해 출발했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가면서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일본의 평범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답답하게 아파트가 세워져 있지 않고 편안한 주택들이 소담하게 모여 있는 모습은 비가 내리는 조용한 고요와 어울려 편안함을 주었던 것 같다. 대중매체로 일본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제일 부러웠던 것 중 하나가 이렇게 주택에 사는 것이었다. 이렇게 주택들이 모여 있는 마을은 골목길을 만들고, 그 골목길의 존재가 무지 아름답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도중에 일본의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타서 대학생 형들과 말을 걸어서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기차를 타고 교토로 향했다. 

마침내 교토 역에 도착했을 무렵,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고 그 때부터 나의 운동화는 젖어가기 시작했다. 원래 기온 마츠리를 보러 간 교토였지만 태풍으로 인해 마츠리가 취소되어, 우리는 완전히 자유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2시까지 헤어져서 점심을 먹고 역 내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서 모이기로 하고, 홈스테이 팀별로 나뉘어졌다. 우리 팀은 역 내의 백화점의 11층에 있는 식당 코너에 갔다가 너무 가격이 비싸서 결국, 출입구 옆에 바로 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원만하게 우동을 먹어서 맛있었지만, 오야코동을 먹은 동건이는 느끼해서 불쌍하기도 했었다. 그러고 다시 모여서 의논을 통해, 전통시장과 하치만 신사를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이 신사로 가는 길의 여정이 바로 거의 순례길이라 할 정도로 힘들었었다. 다시 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움직여서 시장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려서 나온 순간, 눈앞에 우산을 뚫을 듯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웅덩이가 넘쳐나서, 어디를 밟아도 운동화로 펌프질을 하듯 물이 들어왔다.


가는 길이 전통 상점가였는데 무척이나 볼 게 많아서 발은 힘들었지만 눈을 즐거웠다. 전통 찻집이라거나 전통과자를 파는 가게라든지 교토의 특색을 살린 가게가 많이 보여서 눈구경을 하는 것도 한국과 달리 꽤 쏠쏠했다, 그렇게 눈은 즐거웠지만, 발은 이미 운동화가 침수 상태가 되어서 움직일 때마다 양말로 빨래하듯이 쭉쭉 물이 나오는 것이 발에서 느껴졌다. 옆의 세프 형도 똑같은 상황이어서, 우리 둘은 “아, 왜 일기예보를 무시하고 신발을 신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쭉 걸어가던 도중, 잠깐이라도 보여주는지 가마 행렬이 보였고 서서 구경하면서 폰으로 열심히 동영상을 찍었다. 하치만 신사의 입구를 들어가면서 보니, 마치 불교의 사천왕처럼 두 수호신상이 놓여 있어서, 일본 신토의 유래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들어가서 구경을 하던 도중, 도라이를 발견해서 무척 반가웠았다, 신상 내의 작은 사당 앞에 작게나마 있었는데, 대중매체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 좀 더 분위기 있게 느껴졌다. 비가 오는 날이라서 조용한 것이 도라이의 분위기와 어울려 감상을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본전을 구경했는데, 건축 양식도 일본 고유의 신토와 불교, 도교 등 여러 종교가 섞여 있어서 그런지 화려하면서도 뭔가 한국, 중국의 절이나 유교 학당 건물의 건축 방식과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건물들을 구경하고, 신사의 빼놓을 수 없는 묘미, 오미쿠지를 일행들과 같이 했다. 통을 흔들어서 나온 나무 막대기에 적혀있는 숫자를 말하고, 100엔을 내고 운세가 적힌 종이를 받는 것이었는데, 일본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면서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이 오미쿠지를 뽑는 것이었는데 하치만 신사에서 소원 하나를 성취하게 되었다. 형들과 일행들은 연애 운을 많이 봤는데, 서로 뭐가 나왔는지 확인하면서 운세를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던 경험이었다. 나는 그냥 1년 운을 보았는데, 해석해보니 주위의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이어서 왠지 그러고 보니 ‘주위의 가까운 가람들은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 재신이는 연애 운이 대길이 나와서 형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는 등, 비속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신사에서 나와 전통 시장으로 가던 중, 쇼핑몰 건물이 보여서 40분 정도 쉬어갔는데, 그 말을 듣자 마자 세프 형과 나는 신발 코너로 달려가 조리(한국말로는 쫄이)를 샀다. 질척거리는 양말을 벗고 물티슈로 발을 닦고, 산 조리를 신었을 때의 그 기분이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발이 편해야, 건강하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왜 그런지 이해가 갈 정도였다. 그렇게 조리를 신고 일행이 모여 있는 스타벅스로 가서 일본에만 있다는 복숭아 프라파치노를 시켜 먹었는데, 의외로 엄청 맛있어서 순식간에 해치웠던 기억이 난다.


조리를 신고 즐겁게 전통 시장으로 향했다. 시간을 정하고, 홈스테이 팀별로 나뉘어서 구경을 하고 여러 가게와 음식점을 봤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이 애니메이션 DVD와 라이트노벨(전문용어)와 만화를 파는 가게였다. 곳곳에 포스터와 모형을 세워두고, 애니메이션의 주제가가 흘러나왔는데 구경하면서 ‘와’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 가자, 피규어 가게도 보였는데 세프 형이 피규어를 사달라는 친구 부탁이 있었다고 해서 가격을 알아보았는데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 그러고 시간이 되자 입구로 다시 모였는데, 저녁도 결국 거의 팀별로 나뉘어져서 먹게 되었다.


우리는 우연히 시장 골목에 있는 작은 라멘 가게를 발견해서, 그 가게에서 먹었는데 역시 본고장이라 그런지 무지 맛있었다. 세프 형은 소유 라멘에 밥도 시켜서 먹었는데, 형도 맛있었다고 만족해했다. 라면을 시키면서 배운 일본어를 써먹는 재미도 무척이나 쏠쏠했었고 말이다. 그러고 소화를 시키면서 걷던 도중, 나에게 여동생이 보낸 세프 형과 같은 부탁이 담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래서 마침 생일도 가까워서, 봤던 피규어 가게에 가서 큰 맘 먹고 동생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피규어를 샀다. 그렇게 피규어까지 사니, 양손에 쇼핑백이 가득 들려 있어서, 형들이 힘들겠다고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기차 시간이 가까워서 서둘러 역으로 가서, 티켓을 끊고 기차를 탔는데 일본의 교통정산 요금 시스템이 참 신기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은 그냥 한번 개찰구에서 찍으면 공항철도가 아닌 이상, 정산할 필요가 없는데 일본은 한 역씩 멀리 갈수록 그에 따라 요금이 늘어났다. 합리적이라고는 느껴졌으나, 역시 그 살인적인 교통비는 끔찍했다. 일행들은 비속에서 계속 걸어 다녀서 그런지 지쳐서, 가면서 대부분 잤고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을 구경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야경도 낮에 올 때 본 모습만큼, 밤의 고요함과 어울러져서 꽤 운치 있고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야베 역에 도착하자, 다나카 씨가 직접 차로 마중하러 나오셨다. 집으로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재신이의 오미쿠지 이야기를 하면서 웃기도 했다. 집에 도착해서 모두 씻고, 금방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맛있게 밥을 먹고, 마을버스를 타고 일본 전통 종이 공장으로 갔다.


그 곳에서 학생 교류회를 하기로 한 일본 대학의 유학생들과 만났는데 유학생들은 베트남, 중국, 그리고 일본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볍게 입구에서 자기소개를 한 뒤, 두 팀으로 나누어 견학을 했다. 내가 속한 팀은 먼저 견학을 하고, 전통 종이 만들기를 했는데 막상 보니 재료도 한지와 똑같은 닥나무로 만들고 제작 과정도 한지 박물관에서 본 한지의 제작 과정과 거의 유사해서 놀랬다. 그래서인지 이 일본 전통 종이라는 것이 한반도에서 전래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제작 체험은 나름 재미있었다. 틀을 닥나무 용액이 담겨있는 통에 넣고 들어올려, 수평으로 균형 있게 흔들고 앞뒤로 평형하게 흔들어서 모양을 잡는 등, 은근히 스킬이 필요했지만 자신만의 두께와 색소로 무늬를 넣는 것은 봉사자, 대학생들 상관없이 즐거워했던 것 같다. 그렇게 종이 공장에서의 재밌는 체험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마을 회관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일본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교류 활동을 시작했다.


먼저 각자 다시 대학생들은 학부와 자세한 소개를, 고등학생들도 각자 일본어가 되는 사람들은 소개를 했다. 그러고서는 한중일 삼국과 베트남에서 온 학생들이 거로 교류하는 것은 뜻 깊은 일이라며 유학생들의 조장이 인사말을 시작했다. 서로 묻고 싶은 궁금한 것이라든가,

아야베 시에서 봉사하고 관광하면서 느낀 좋은 점과 이 건 개선했으면 하는 점을 같이 토론했다. 나도 옆에 앉은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 형에게 평소 베트남에 대해서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았고, 아야베 시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말한 대로 교통수단 다양화가 시급하다고 느꼈다. 한편, 일본 고유의 모습을 좋은 사람들과 느낄 수 있다는 건 좋은 점이고 이를 잘 살리면 시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말하였다.


그렇게 교류 활동을 마치고, 4시에서 5시쯤이 되자,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한 장소로 이동했다. 파티 장소 뒤로는 넓은 들판과 산, 그리고 파란 하늘이 기분 좋게 펼쳐져 있어서 그야말로 파티를 하기 딱이었다. 평소 동생이 보던 애니메이션에 나오던 바비큐 파티가 어떤 것일까하고 많이 궁금해 했는데, 생각보다 음식과 고기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았다. 굽던 고기가 슬슬 익어갈 쯤, 초대한 홈스테이 가정의 분들이 왔고 서로 자신이 묵은 가정의 분들께 음식을 권하면서 화기애애한 파티를 계속해 나갔다. 내가 묵은 다나카 씨의 아이들인 소라, 시오리, 아야네는 오히려 고기보다 옥수수구이를 더 좋아해서, 아이들의 입맛은 조금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일본의 고기는 소고기, 돼지고기보다는 압도적으로 닭고기의 양이 많았다.


일본이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기 시작한 건 근현대에 들어서 서구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닭고기를 바비큐용으로 먹는다니 무척이나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양파나 다른 야채들도 구워서 바비큐용 특제 소스에 찍어먹고, 고기도 질리도록 최대한 먹어서 더 할 나위없는 파티였었다. 파티를 하면서 홈스테이 가정 분들과 아이들과 어울리느 건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즐거운 파티를 마치고서는, 이코이너무라 복지관 근처에 있는 숙소로 가서 다들 씻고 거실로 나와서 과자와 함께 맥주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은 두 팀으로 나뉘어서 봉사를 하는 날이었다. 복지관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은 뒤 쉬다가 마을 버스로 타고 가다가 장미 농원과 호텔에 가는 팀으로 나뉘었다. 나는 호텔에 가는 팀으로 세프 형과 함께 나뉘어졌는데, 호텔 직원이 설거지, 룸 정리, 연회장 세팅 등의 일이 있다고 말했는데 룸 정리를 제외하면 나머지 2가지 일은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1명씩은 들어있어야 한다고 해서 결국 나와 세프 형이 설거지 담당이 되었다. 그 날, 나와 형은 설거지의 극한을 맛본 체험을 했는데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자기와 그릇들, 좀 했다 싶으면 어느새 쌓여있는 설거지할 그릇들, 정말 손이 부르트도록 닦고 씻고 건조기에 돌리고 곡 EBS의 극한 직업을 찍는 기분이었다.


도중에 박사같이 차려 입으신 총주방장 할아버지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달콤한 매실조림도 주셔서 나름대로 견딜 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약 300~500인분의 설거지를 마치고, 3층의 쉼터에서 얼려온 환타를 마시는 기분이란 정말 환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쉬던 중, 연회장 세팅을 담당한 팀과 룸 정리를 맡은 팀도 와서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자 호텔 내에 있는 바이킹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렇게 설거지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거들 떠 보지도 않는 카레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또 츠유소멘도 있었는데, 차가운 면에 고명을 올리고 간장 소스를 넣고 같이 먹으니 너무 맛있었던 것 같다. 맛있는 점심을 마치고 장미 농원에 간 다른 일행들과 만나서 호텔 내의 온천에 온천욕을 하러 갔다. 여러 탕이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우유탕이 최고였던 것 같다. 시각 효과가 있어서 그런지, 몸을 담그면 저절로 피부가 고와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냉탕도 들어가서 몸을 식히고, 다시 온탕에 들어가고 그렇게 온천욕을 즐기던 도중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설거지의 피로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것 같은 상쾌함을 주었다. 온천욕을 즐겁게 마치고, 나와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송별회를 가러 갔었다.


송별회에는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신 마을 촌장님과 일본인 스텝인 타이치 씨의 가족들도 와서 같이 즐거운 송별회 자리를 가졌다. 송별회 안주로 온 음식들은 먹을게 너무 많았고, 그 중에는 김치볶음도 있었다. 주먹밥에 김치볶음을 곁들어 먹으니 어찌나 맛있던지, 난 역시 한국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즐거운 송별회를 하면서, 타이치 씨의 부인과도 통역하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듣기도 하였다. 송별회를 마치고 남은 음식은 싸서, 숙소로 갖고 가 일행들끼리 일본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무난하게 끝난 것을 축하하며 술과 음료수를 마시면서 먹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즐겁게 이야기 하는 것, 그 자체가 너무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었다. 한국에서는 입시나 성적에 치여 사느라, 둘러보지 못 했던 사람과 어울리는 즐거움, 그런 것이 너무나 뜻 깊게 느껴졌다.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르 타고 오사카 공항으로 갔다. 티켓팅을 세프 형과 마치고, 수속을 마친 뒤 식당에서 라멘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 그런 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살 기념품을 샀는데, 기념품점에서 교토 전통 시장에서는 비싸서 사지 못 했던 밥그릇 세트가 싼 가격에 팔고 있어서 어머니에게 줄 선물로 사고, 유카타도 보여서 크게 마음먹고 내 사이즈에 맞는 걸로 한 벌 구매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잊지 못 할 봉사활동 프로그램의 추억을 뒤편으로 비행기는 인천 국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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